필자는 전쟁 영화광이다. 같은 영화도 수십번을 반복해서 보기도 한다. 그 중, '제로 다크 서티'는 베스트 5 안에 든다. 9.11 테러 이후, 오사마 빈라덴을 잡는 과정을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폭발물 제거팀을 그린 '허트 로커'도 캐릭터의 심리를 생생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이 여성 감독인 캐스린 비글로우의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지난 주 개봉한 '아바타 : 불과 재'의 제임스 카메론의 전 부인이기도 하다.
2025년 그녀의 영화가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다. 정치 스릴러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이다. 황금사자상 후보와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에서는 제한 상영으로 개봉했으며, 10월 24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공개된다. 내용은 이렇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일 핵 미사일이 미국 본토로 발사되면서 미국 정부와 군이 이에 대응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핵 미사일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이 작품의 진짜 관심사는 파괴 그 자체가 아니라 ‘결정이 이루어지는 시간’에 있다. 캐스린 비글로우 감독은 폭발의 장면보다 폭발 이전의 침묵, 즉 인간이 판단해야 하는 순간의 압박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 영화는 묻는다.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을 때, 인간은 과연 윤리적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판단은 누구의 몫이어야 하는가.
이 작품에서 시간은 더 이상 축적되거나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연습과 숙고, 토론과 망설임은 모두 위험 요소로 간주된다. 핵 미사일의 도달 시간은 인간의 인내를 압도하며, 현대 사회가 기술의 속도에 맞추어 윤리를 재편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거의 윤리는 충분한 시간을 전제로 작동했다. 칸트적 숙고도, 아리스토텔레스적 중용도 ‘기다릴 수 있음’을 조건으로 삼는다. 그러나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의 세계에서 시간은 항상 부족하며, 인내는 미덕이 아니라 실현 불가능한 조건이 된다.
이러한 시간의 압축은 현대인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받고, 유예 없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영화 속 위기 상황은 극단적이지만, 그 구조는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클릭 하나, 결정 하나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는 사회에서 인간은 점점 더 ‘생각하기 전에 반응하는 존재’가 되어간다. 이 영화는 그 위험한 속도를 핵 위기라는 비유를 통해 가시화한다.
권력의 형상 역시 이 작품에서 인상적으로 변주된다. 대통령은 전능한 지배자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불완전한 정보와 상충하는 보고 속에서 고립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합의와 절차는 시간 앞에서 무력해지고, 최종 판단은 한 개인에게 집중된다. 영화는 권력을 도덕적으로 단죄하지 않는다. 대신 권력이 짊어져야 하는 윤리적 무게와 그 고독을 냉정하게 응시한다. 이 결정은 영광이 아니라 짐이며, 어떤 선택을 하든 되돌릴 수 없는 책임이 남는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영화에 명확한 ‘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격의 주체는 끝내 분명히 규명되지 않는다. 이는 공포의 방향을 외부에서 내부로 돌린다. 위협은 특정 국가나 인물이 아니라, 자동화된 군사 시스템, 즉각적 대응 논리, 그리고 상호 불신으로 구성된 구조 그 자체다. 우리는 이미 폭발 가능한 집, 곧 다이너마이트 위에 세워진 세계에 살고 있다. 영화의 제목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거주하는 문명의 상태를 가리킨다.
영화의 결말은 많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서사의 결핍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장치다. 감독은 옳고 그름을 판정하지 않고, 판단의 책임을 관객에게 돌려준다. 결정 이후에도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무엇이 최선이었는지, 다른 선택은 가능했는지에 대한 고민은 영화관을 나선 이후에도 계속된다. 이 지점에서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단순한 정치 스릴러를 넘어 고전적 비극의 형식을 띤다. 비극이란 해답을 주는 장르가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영화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속도의 시대에 윤리는 가능한가. 기술이 인간보다 빠른 결정을 요구하는 세계에서, 책임과 숙고는 어디에 위치할 수 있는가. 영화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이미 그 질문 한가운데에 서 있으며, 그 집이 언제 폭발할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음을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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