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루이 다비드
파리 중산층 출생의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로마상을 받아 로마로 유학을 떠난다. 로마 유학 시절, 고대 미술을 접하며 역사화를 그려 고전주의의 지도자가 되며, 근대 회화의 시조가 된다. 그는 로베스피에르의 친구로 프랑스혁명의 지지자였다. 프랑스 공화국에서는 독보적인 예술가로 주목을 받는다.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며 그도 투옥이 되었으나 나폴레옹 1세에게 협력하며 프랑스 문화재 보호에 앞장선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 궁정 화가가 되어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을 그린다. 나폴레옹 몰락 후, 그는 벨기에 브뤼셀로 망명한다. 그곳에서 사망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그의 유해를 프랑스로 들이지 않는다.
고전주의 확립
파리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접하지만, 로코코의 화려함에 대한 반감이 컸다. 로마 유학 시절, 고대 그리스와 로마 조각에서 영감을 받았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은 위대하지만, 고대는 완벽하다.'
고대 로마의 신화를 통해 도덕적 미덕과 공공의 의미를 강조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그를 국가적 화가의 반열에 올려 놓는다. 동시에 당시 사회 불안과 공화주의적 이상을 예견한 그림이었다. 다비는 그림을 통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프랑스혁명이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한다. 국민공회 의원으로 혁명 순교자 장 폴 마라의 죽음을 그린 '마라의 죽음'은 정치 선전의 수단이 되는 결정적인 작품이 된다. 반대파 숙청과 혁명 행사 기획도 관여하며 예술을 통해 혁명에 봉사하는 정치적인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친구였던 로베스피에르의 실각으로 잠시 고난을 겪지만, 그의 정치 감각은 살아있었다. 나폴레옹의 권력에 협력하며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 '나폴레옹 대관식'을 그리며 나폴레옹을 고전적 영웅으로 묘사하며 이상적인 황제로 표현하고, 제국의 정당성과 질서를 시각적으로 정당화하는 큰 역할을 한다. 그는 이런 고전풍의 역사화를 통해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건축하는 존재가 된다.
그는 짧았던 로코코의 끝자락에서 고전주의를 새롭게 확립시키며 혁명적 화가가 되며, 예술가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권력을 가진다. 남다른 정치적 감각으로 나폴레옹의 궁정 화가가 되며 새로운 고전주의의 확립을 가져온다. 그의 작품은 고정된 포즈로 배치하여 극적인 장면처럼 연출되어있고, 감정은 절제되면서 명확하다. 빛의 처리는 극단적인 명암 대비를 보여주며 바로크의 느낌을 보여준다. 바닥, 기둥 등의 모든 선은 모호하거나 붓 터치가 드러나지 않게 정확한 선으로 그린다. 색의 사용도 차갑고 건조한 색조를 주로 사용하여 이성적, 도덕적 분위기를 잡는다. 이런 특징들이 로코코 미술의 감각보다는 이성을 따르는 고전주의 쪽이 강하다.
예술과 정치
다비드는 자의든 타의든 시대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 인물이다. 프랑스혁명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온 유럽의 인식이 바뀌는 시간이었다. 이 흐름에 다비드는 예술을 통해 공공의 미덕, 정의, 희생 같은 가치를 더욱 강조하고 싶었다. 그는 예술가로서 시대의 요구에 대한 대답을 했다. 그는 예술의 의무를 감동보다는 아름다움을 통해 행동하게 하고 결단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술은 사회적 현실과 맞닿아 있으며, 인간의 삶과 역사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관되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시대 정신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반대로 예술은 아름다움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하게, 미적 진리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칸트의 미학을 말한다. 오스카 와일드도 '모든 예술은 전혀 쓸모가 없다'라며 급진적 미학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비드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감정을 선동하기보다, 영혼을 고양시켜야 한다.'
질문한다. '예술가는 시대 앞에서 중립적일 수 있는가? , '아름다움만을 좇는 것이 예술가의 도리인가, 아니면 진실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는가?'
다비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다비드의 정치 참여는 예술을 통해 인간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어떤 세상을 바라는지를 구체적 형상으로 보여준 행동이었다. 그가 옳았는가? 아니면 틀렸는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는 시대의 흐름에 침묵하지 않았다. 많은 예술가들이 답하지 않는 질문에 적어도 응답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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