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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오페라 '돈 조반니' - 유혹과 자유의 경계

by Polymathmind 2025. 4. 24.

오페라 '돈 조반니'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1787)는 전설적인 유혹자 '돈 조반니'가 하루 동안 겪는 파국적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수많은 여성과의 관계를 무책임하게 끊고, 귀족과 하인을 가리지 않고 조롱하며 살아가는 그는, 살인과 유혹, 도피를 반복한다. 마침내 그는 과거에 죽인 기사장의 유령 앞에서 마지막 선택을 강요받는다. 회개할 것인가, 끝까지 자신의 삶을 고수할 것인가.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말하고, 지옥의 불길 속으로 끌려간다.

돈 조반니

유혹자, 시대를 거스르다

돈 조반니는 고전적인 ‘카사노바’ 유형의 인물로 보일 수 있지만, 그의 내면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는 단순히 쾌락을 좇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질서와 규범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자이다. 그의 행동은 비도덕적일지언정, 모순 없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신의 존재도, 죄의 개념도 그에게는 아무런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다. 그는 ‘자유’를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모든 행동이 기존 질서로부터의 탈주를 향하고 있다. 계몽주의 이후, 인간은 신 중심의 세계에서 자신 중심의 세계로 이동했다. 그런 시대에 등장한 돈 조반니는, 인간이 도덕과 종교의 틀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지를 묻는 실험적 존재이다. 그는 타인의 감정이나 고통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 집중한다. 이 점에서 그는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상징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욕망의 노예다.

그의 삶은 무책임하고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진실되다. 그는 거짓으로 신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사회적 역할을 연기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것을 꾸미거나 감추려 하지 않는다. 이 태도는 경멸을 살 수도 있지만, 오히려 도덕적 위선에 찌든 인간들에 대한 일침처럼 느껴진다. 돈 조반니는 시대의 도덕을 거스르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그 시대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거울이 된다.

음악으로 말하는 모순 인간

모차르트는 돈 조반니라는 인물을 대사보다 음악으로 더 깊이 그려냈다. 이 작품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나 감정 표현을 넘어, 인물의 내면과 세계관을 통째로 말해주는 언어다. 조반니의 아리아들은 대체로 경쾌하고 매혹적이며, 청중을 유쾌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불협화음, 급격한 전조, 리듬의 불안정함 등으로 인해 끊임없이 균열을 암시한다.

대표적인 아리아 “Fin ch’han dal vino(와인이 있는 한)”를 보자. 표면적으로는 파티와 여자를 즐기려는 가벼운 유희처럼 들리지만, 곡의 구조는 매우 빠르고 불안정하다. 끝없이 질주하는 듯한 음악은 단순한 기쁨이 아닌 어딘가로 도망치듯 살아가는 조반니의 내면을 비춘다. 또 다른 아리아 “La ci darem la mano(우리 손을 맞잡고)”는 유혹의 순간을 아름답게 묘사하지만, 선율은 이탈과 갈등을 품고 있어, 그 유혹이 완전하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모차르트는 조반니를 단순한 자유로운 인간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내면이 공허한 자이며, 겉으로는 유쾌하지만 속으로는 불안에 사로잡힌 존재다. 음악은 그가 도덕과 규범을 거부하는 대신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자유의 음악은 끝내 절망의 화음으로 수렴된다. 이는 모차르트가 가진 깊은 통찰이자, 음악이 문학이나 철학보다 앞서 인간을 파헤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자유의 끝

'돈 조반니' 의 마지막 장면은 오페라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클라이맥스 중 하나다. 돈 조반니는 생전에 살해한 기사장의 석상 앞에서, 회개할 기회를 제안받는다. 그러나 그는 반복해서 “아니요”를 외친다. 그리고 결국 지옥의 불꽃 속으로 끌려가며 무대는 닫힌다. 이 장면은 단지 형벌의 묘사가 아니다. 한 인간이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고수할 수 있는가, 또는 그 신념은 과연 자유였는가를 묻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놓고 해석은 분분하다. 어떤 이는 조반니를 죄에 대한 대가를 받은 자로 보며, 그의 파멸을 도덕의 승리로 해석한다. 그러나 또 다른 시선에서는, 그는 끝까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며 가장 자유로운 인간으로 죽었다고 평가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에서 조반니를 ‘미적 인간’이라 부르며, 도덕을 회피하는 자의 불행한 종말로 보았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조반니에게서 미적 삶의 최고 형태, 즉 욕망의 순수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조반니의 “아니오”는 단순한 부정이 아니다. 그것은 신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주체성이자, 모든 사회적 규범을 넘어선 자기 선언이다. 우리는 그가 옳았는가를 판단하기보다는, 그가 묻고 떠난 질문의 무게에 주목해야 한다. 자유는 아름답지만, 그것이 책임 없는 자유일 때 얼마나 위험하고 고독한지, 조반니는 몸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