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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On the Map-영화 속 지도, 핫 플레이스

by Polymathmind 2025. 2. 27.

영화 속 지도

1942년 마이클 커디즈 감독의 영화 '카사블랑카'가 개봉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이 배경이며 잉그리드 버그먼, 험프리 보가트의 매력을 가득 채운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지도가 꽤 자주 등장하는데, 초반 마르세유 폭격 장면과 유럽의 지도가 겹치며 독일 점령지가 늘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구름에 가리어지며 지구본이 등장한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의 지도는 전쟁의 범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전쟁의 난민들의 탈출 경로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면서 그 사이에 있는 카사블랑카라는 곳을 보여준다. 카사블랑카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곳임을 표현하기도 하며 갇힌 공간이며 열린 출구라는 이중적 의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주인공들이 지도를 직접 들고 장소를 옮기는 것은 아니지만, 지도를 통한 사랑과 죽음 그리고 탈출이라는 이야기를 관객과 함께 실감 있게 보여준 영화다. 

영화 속 지도를 생각하면 단연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가 떠오른다. 고대 문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단연코 지도다. 항상 대학 강의실에서 시작해서 고고학을 강의하다 친구나 적들이 찾아와 그를 대학 밖으로 내몬다. 그리고 지도가 펼쳐지고 10초 만에 지구 반대편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지도 혹은 지도가 적힌 작은 노트가 들려있다. 

지도의 발전은 영화에서 먼저 시도된다. 1964년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 중 '골드핑거'에서 위성 항법 장치가 등장한다. 적의 차에 장치를 심으면 그 차를 추격할 수 있다. 50년 후, 내비게이션 '톰톰'이나 '가민'의 기본 발상이 된다. 

더 나아가서는 2004년 해리포터 시리즈 '아즈카반의 죄수'에서는 마술 지도가 등장하는데, 종이 지도를 펼치고 마술 지팡이를 톡 건드리면 호그와트 내부 지도에 발자국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지도에는 모든 사람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있는 마술 지도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지도를 본따서 만든 건 모르겠으나, 전투 공간 주도적 인식(DBA)에 적용되어 대응하는 디지털 지도 기술이 개발된다. 

영화 속의 지도는 단순한 배경이나 지명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서사를 이끄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확실치 않는 보물을 따라가도록 하는 것은 바로 보물 지도 때문이다. 모험과 탐험의 시작점이기도 하고, 우리의 욕망과 탐욕의 상징이기도 하다. 

핫 플레이스

영화들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대중을 위한 관광 코스가 새롭게 짜여지기 시작한다. 영화 촬영지 여행이다. 앞서 말한 영화 '카사블랑카'의 촬영지는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촬영하지 않았다. 대부분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촬영된다. 주인공이 만난 카사블랑카의 카페, 거리는 스튜디오 내 세트장이고, 공항 장면은 LA 근교 공항을 섭외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스타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 한다. 진짜는 아니지만, 동경하는 스타들이 머무르고 열정을 쏟아낸 곳을 찾았다. 그리고 영화의 숨은 이야기들이나 영화 기법을 새로 알아가는 재미도 꽤 있었을 것이다. 

조금 욕심이 더한 사람들은 아예 스타 배우의 집을 보러 간다. 1930년 대 부터 관광객을 대상으로 유명 배우의 집을 표시한 지도가 인기를 끈다. 지도에는 유명 배우들의 사진이 함께 있어 그들의 집 앞까지 차를 어슬렁 서행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기존의 지도에 손으로 표시해서 팔았지만 꽤 정확했단다. 지금도 LA에는 '스타 홈즈 투어'가 관광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또한 유명 스포츠 스타 버전도 있고, 충격적인 범죄 현장 버전도 있다.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와 뉴욕 양키스의 타자 조 다마지오와 잠시 살았던 집, 마릴린 먼로와 존 F. 케네디가 머물렀던 호텔, 휴 그랜트가 창녀와 함께 있다 붙잡힌 장소 등등 흥미로운 장소들을 표시한다. 이 모든 버전을 버스로 90분 간 다닐 수 있다. 운전수는 다니면서 스타들의 가십을 설명해 준다. 지도도 필요 없다. 정확한 장소와 사건 그리고 실명까지 꼼꼼하게 설명해 준다. 나름 지도라면 지도다. 

인간은 지도를 통해 무엇을 원하는 걸까? 스타의 집을 찾아가며 영화 속의 인물이 존재함을 확인하고 싶고, 충격적인 범죄현장을 가며 역사의 증거를 보고 싶어 한다. 우리 인간은 공간 안에 기억이 보존되며 그것을 역사화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지도를 통해 장소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인 방식은 우리의 감정, 기억, 그리고 사회적 의미를 그곳에 담는다. 지도의 장소는 단순히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의미를 부여한 공간이다. 즉 그곳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그 이야기를 직접 보고 듣고 싶어하는 우리의 본능이다.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우리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