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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책리뷰] 혼돈의 시대 : 리더의 탄생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by Polymathmind 2025. 10. 25.

앞서 소개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12촌 관계인 프랭클린 D.루스벨트는 미국의 32대 대통령이다. 네덜란드 이민자 였던 뉴욕계 부유한 정치 가문에서 태어나 엘리트였다. 39세 때 휴가 중, 차가운 물에 빠진 이후 허리 아래가 영구 마미되어 소아마비 진단을 받는다. 가족은 정계 은퇴를 원했지만 주변의 설득으로 다시 복귀한다. 그는 재임 기간 중 대중 앞에서 휠체어 사용하는 모습을 절대 노출하지 않으려 했다. 그가 찍힌 사진을 보면 보통 아들 중 한 명이나 보좌관의 부축을 받아 똑바로 서있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소아마비는 인생을 멈춘 것 같았으나, 오히려 인간의 나약함을 아는 지도자로 만들었다. 그는 '소아 마비 국립 재단'을 설립하고 백신 개발을 주도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마찬가지로 환경 보전에 큰 관심을 가졌다. 국립공원, 국립산림의 확장을 추진한다. 대일본 선전포고, 대독일 선전포고로 세계 대전에 참가하며 핵무기 프로그램인 '맨해튼 계획'을 승인한다. 1945년 4월, 뇌출혈로 63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프랭클린 D.루스벨트 - 두려움을 통과한 용기의 지도자

리더십은 언제나 위기의 언어로 기록된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통치의 기술이 주목받지만, 세상이 흔들릴 때는 인간의 신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와 아내 엘리너 루스벨트는 바로 그런 시대의 두 얼굴이었다. 한 사람은 폭풍 속의 조타수로, 다른 한 사람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는 등불로, 이 두 사람은 함께 ‘두려움의 시간’을 통과했다.

엘리너 루스벨트는 프랭클린의 사촌이자 아내로, 초기에는 그늘 속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녀 역시 자신만의 상처(어린시절 상처, 남편의 2번 외도)를 안고 있었지만 그 침묵을 견디는 대신, 공감의 언어로 바꾸었다. 그녀의 내면적 강인함은 훗날 남편의 리더십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 된다. 

1932년, 대공황의 절망 속에서 프랭클린이 대통령으로 등장했을 때, 미국은 다시 걸을 힘을 잃은 나라였다. 그가 취임 연설에서 남긴 말은 이제 역사적 상징이 되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다.”

이 말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민에게 자신의 내면을 되찾으라는 초대였다. 루스벨트는 ‘뉴딜(New Deal)’을 통해 경제를 복원하려 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회복시키고자 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회복의 과정을 함께 이끌어간 이가 엘리너였다. 엘리너는 백악관의 벽을 넘어 거리와 공장, 빈민가를 직접 찾아갔다. 그녀는 대통령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그 고통을 전달했다. 때로는 정책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때로는 대통령보다 앞서 정의를 말했다. 프랭클린이 라디오로 국민에게 희망을 이야기할 때, 엘리너는 그 희망이 실제 삶 속에서 작동하도록 돕는 인간의 손이었다.

라디오 연설 ‘노변담화(Fireside Chat)’는 프랭클린의 리더십을 상징했지만, 그 목소리 뒤에는 언제나 엘리너의 섬세한 시선이 있었다. 그녀는 두려움의 시대에 공감의 정치를 실천했다. '노변담화'란 난로 곁이라는 뜻이다. 아늑하고 따뜻한 난로가 있는 집에서 친근한 이야기로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각 집까지 전달되고 쉬운 언어를 쓰며 국민의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이렇듯 루스벨트 부부의 리더십은 서로 다른 결로 빛났다. 아이러니하게 둘의 사이는 철저한 동료사이였다. 프랭클린의 두 번의 외도로 이혼 위기까지 갔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하지못했다. 이후, 엘리너는 용서대신 남편과 거리를 선택하며 영부인 역할을 수행한다. 사랑의 상처를 공적 헌신으로 전환한 것이다. 프랭클린은 공포를 다스리는 용기로 시대를 이끌었고, 엘리너는 고통을 끌어안는 공감으로 인간을 구했다. 그들의 리더십은 공동체를 향한 책임의 결속이었다. 

결국 루스벨트 부부의 리더십은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미국 역대 4선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루스벨트는 위대한 지도자였다. 하지만 엘리너가 선택이 반대로 흘렀다면 그는 4선(12년)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프랭클린의 사생활과 엘리너의 독립적인 행보는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그 상처가 ‘두 개의 리더십’을 완성시켰다. 그들은 더 이상 부부로서의 관계에 머물지 않았다. 한 사람은 권력의 정점에서 국가를 이끌었고, 다른 한 사람은 거리의 끝에서 인간을 품었다. 공적 리더십과 사적 고독은 서로에게 그림자처럼 얽혀 있었고, 그 긴장감이야말로 루스벨트 부부가 남긴 진정한 리더십이었다.

오늘날 리더십은 종종 강인함과 확신으로만 정의된다. 그러나 루스벨트 부부의 삶은 우리에게 다른 질문을 던진다.       

 “리더는 언제 가장 인간적인가?”

그 답은 아마, 고독 속에서도 타인을 위해 마음을 내어놓을 때일 것이다. 프랭클린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고, 엘리너는 인간에게 존엄을 돌려주었다. 두 사람의 길은 달랐지만, 결국 한 점으로 수렴된다. 그것은 ‘리더십의 본질은 권력의 기술이 아니라, 고독 속의 공감’이라는 진리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진정한 리더십은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을 믿는 용기로부터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