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
나는 오페라 연출가다. 현재 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나의 수업은 조금 특별하다. 아마 현 대한민국 음악대학 성악과에서는 없는 수업일 듯 싶다. 오페라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훈련을 하고 있다. 연기를 직접 해보면서 무대에서 빛나는 법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외국에서 받았던 수업의 형태와 내가 적용하고 싶었던 인문학적 방법을 융합했다. 수업을 시작하는 첫 시간에 꼭 해주는 말이 있다.
'나는 끊임없이 질문을 할 것이고, 답을 구하는 것은 너희들이 할 것이다.'
'실기중심의 참여 수업은 참여도가 수업의 질을 만든다.'
'발표는 자발적으로 한다. 수업 날, 발표자가 없으면 수업은 종료된다.'
친구들은 의아해한다. 답을 받고 싶은데 스스로 찾으라 하고, 발표자가 없으면 수업이 끝난다.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답답해한다. 실제로 두세 번 발표자가 없어서 수업 시작 30분 지나서 나는 집으로 갔다. 오페라실을 나가는데도 아무도 날 잡지 않았다. 그날 학비는 날린 것이다.
수업 시간은 늘 나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아주 사소한 질문이라도 질문을 받으면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은 자신을 정비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좋은 답은 가장 좋은 질문이다."
우리는 싸울 줄 모른다. 그저 피할 뿐, 거추장스러운 일들을 궂이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계속 피하기만 하면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는 싸워야 한다. 학기 중에 두 번은 토론을 한다. 전쟁을 하는 날이다. 하지만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앉은자리를 기준으로 찬반 진영을 나눈다. 분명 누군가는 반대쪽으로 가면 안되냐고 질문한다. 안된다. 그 자리에서 논리를 펴야 한다. 토론의 주제는 전공과 상관없이 주어진다. 전혀 모르는 주제라면 휴대폰과 태블릿을 통해 증거와 자료를 찾아서 싸우라 한다. 수치화된 자료는 가장 좋은 자료가 된다. 처음엔 뭘 찾아야 할지 모르다가 시간이 지나면 아주 좋은 자료를 찾아낸다. 빠르고 정확하게 자료를 찾기 위해 어떤 키워드를 써야 하는지를 배운다. 토론은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상대방을 듣는 법, 대립과 대화의 균형을 잡는 법, 승리보다는 진실을 찾는 법 등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좋은 교육 방법 중 하나다. 아쉽게도 대한민국의 교육은 토론을 선택하지 않는다. 싸우는 것이 나쁜 것이라 배우기 때문인가?
성악과라고 해서 수업시간에 노래만 하지 않는다. 오페라는 노래하며 연기를 하는 종합예술이다. 관객에게 나의 역할의 의도와 상태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렇다면 연기라는 감정 표현이 자연스럽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해보지 않은 연기를 하는 수업으로 전환했다. 처음에는 노래하는 수업인 줄 알고 왔다가, 당황한 친구들이 많았다. 연기 경험은 전혀 없는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오페라를 해야하니까 연기를 강요받는다. 나도 그랬다. 그게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지금 이 친구들에게는 연기의 개념만이라도 알려주고 졸업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끌어올리는 1인 연기부터 즉흥연기, 군중 연기까지 기초적인 개념과 함께 경험한다. 그 후, 음악에 적용한다. 감정을 듬뿍 담아서 노래하면 분명히 달라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연기는 인간의 본질을 그대로 표현하는 아주 성스러운 일이다. 감정의 전달은 순수해야 하며, 진실로 해야 한다. 그래야 무대 위의 배우는 빛난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대에서 주어진 미션을 못한다. 분명히 슬픔을, 기쁨을, 분노를, 행복을 죽어라 표현해야 한다. 지금 내가 무슨 상황인지, 내 감정은 무엇인지, 그 감정을 어떤 음악을 타고 흘러가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표현과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이 질문을 해야한다. '나는 누구인가?'
연기는 대부분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과 사람을 공감해야 한다.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이다. 즉 개인이나 집단의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반영하여 올바른 비판과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 인간의 존재와 사회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탐구하며, 표현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이 과정을 통해 연기는 하는 사람과 연기를 보는 사람 모두 다 인문학적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진정한 연기였을 때 말이다.
'연기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것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 필립 시모어 호프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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