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잔니 스키키'와 단테 '신곡'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는 단막의 희극으로, 인간의 욕망과 기지를 해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다. 그 뿌리는 바로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Divina Commedia), 그 중에서도 지옥편 제30곡에 닿아 있다.
단테는 ‘거짓말과 사기’를 저지른 자들이 모인 지옥 8번째 의 열 번째 굴(볼지아)에 잔니 스키키라는 실존 인물을 배치한다. 그는 피렌체의 부호 부오소 도나티를 가장해 위조된 유언장을 작성한 죄로 지옥에 떨어진 자다. 단테는 그를 “다른 이의 모습을 흉내 내어 유산을 조작한 자”로 묘사하며, 윤리적·종교적 가치의 위반자로 단죄한다.
그러나 푸치니는 이 인물을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오페라 속 지안니 스키키는 부자들의 위선을 비웃으며, 오히려 그들의 탐욕을 역이용해 딸 라우레타의 미래를 지키는 현실적 생존자로 묘사된다. 그는 법을 어기지만, 그 법이 보호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길을 택한다. 단테가 말한 절대적 정의 대신, 푸치니는 현실의 윤리와 인간의 생존 본능에 더 가까운 인간 중심적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라우레타가 부르는 아리아 〈O mio babbino caro〉는 이 작품의 정서적 전환점이다. “사랑하는 아버지여, 나 그 사람을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그녀의 노래는 부패한 피렌체 사회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순수함의 선언이다. 단테의 '신곡'에서는 신성한 사랑의 상징으로 베아트리체가 등장해 단테를 천국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반면 푸치니의 라우레타는 현실 속에서 사랑을 꿈꾸며 아버지를 설득한다. 그녀는 신적 존재는 아니지만, 세속적 지옥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생활 속 베아트리체로 읽을 수 있다.
이처럼 단테의 ‘지옥’이라는 배경을 차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철학적 반전이 펼쳐진다. 단테가 절대적 도덕과 죄악의 논리를 강조했다면, 푸치니는 인간의 다면성과 유머, 그리고 사랑과 생존의 윤리를 이야기한다. 탐욕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 오페라는, 지옥에서도 피어나는 인간다움에 대한 찬사라 할 수 있다.
위선과 욕망의 공동체
오페라는 부오소 도나티라는 부자 노인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그의 유산을 노리는 친척들은 겉으로는 애도하지만, 실상은 재산 분배에만 관심이 있죠. 유언장이 수도원에 전 재산을 기부한 내용으로 밝혀지자, 그들은 도덕과 법을 무시한 채 지안니 스키키에게 유언장 위조를 부탁한다.
여기서 우리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이중성을 보게된다. 가족은 보호와 연대의 상징이지만, 이 오페라에서는 탐욕으로 뭉친 위선적인 이익 집단으로 그려진다. 인간이 만든 제도나 관계는 언제든 이기적 욕망에 의해 타락할 수 있음을 푸치니는 통렬하게 풍자하고자 했다. 푸치니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위선은 도덕을 바꾸는 태도이다. 우리가 언제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 처럼'
비열함? 저항?
스키키는 애초에 유산 분배에서 배제된 외부자이다. 그러나 그는 친척들의 불법적인 의뢰를 역이용해, 유산을 자신과 딸 라우레타에게 유리하게 재구성한다. 그는 '불법을 가장 적게 해치는 불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스키키는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다. 그는 제도와 윤리를 위반하면서도, 현실을 바꾸는 지혜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쩌면 푸치니는 이 인물을 통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가난한 자에게 정의는 제도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지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스키키는 결국 기성 질서에 대한 유머러스한 저항자로 읽혀진다.
'잔니 스키키'는 겉보기엔 유쾌한 희극이지만, 그 안에는 권력, 욕망, 저항, 관계의 모순이 진하게 녹아 있다. 푸치니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낱낱이 해부하면서도, 그것을 경쾌한 음악과 유머로 포장한다. 그 결과 관객은 웃으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오페라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스키키는 지옥에 있다. 하지만 그는 그 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단테의 관점으로 죄는 절대적인 것일까? 아니면 푸치니의 관점으로 정당한 저항이었다고 생각했을까? 현대적 관점으로 행동의 맥락, 동기, 사회적 구조 속에서 재해석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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