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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오페라 '운명의 힘' - 신의 선택인가, 인간의 선택인가?

by Polymathmind 2025. 9. 27.

베르디의 '운명의 힘'은 사랑과 우연, 복수와 비극이 얽힌 작품이다. 스페인 귀족 알바로와 레오노라는 사랑에 빠지지만, 둘의 도피 시도 중 우연히 방아쇠가 당겨져 레오노라의 아버지가 죽는다. 이 사건은 두 연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알바로는 도망치고, 레오노라는 수도원에 몸을 숨기며, 오빠 돈 카를로는 아버지의 복수를 결심한다. 결국 세 사람은 끝내 파국에 이르고, 작품은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이처럼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우연의 사건 하나로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굴레로 빠져든다.

신의 선택으로서의 운명

고대와 중세의 전통에서 운명은 신의 질서와 뜻으로 여겨진다. 인간은 그 앞에서 무력하며, 운명은 이미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었다. '운명의 힘' 이라는 제목 자체도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레오노라와 알바로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사건은 마치 하늘이 정해놓은 길처럼 흘러간다. 이 관점에서 운명은 곧 신적 힘, 혹은 인간을 넘어선 초월적 질서로 생각할 수 있다. 제목 그대로 '운명'이 작품을 지배하고 이끌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구조는 '우연이 모여 결국 피할 수 없는 필연을 만든다'라고 했다. 베르디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마주한 삶(운명)은 신이 선택한 우리의 길인가?' 라고...

인간의 선택으로서의 운명

하지만 베르디는 단순히 “신이 정했다”는 해석을 넘어서, 인간의 선택과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된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알바로의 ‘실수’는 우연 같지만, 그 이후의 행동과 선택은 모두 인간이 내린 결정이다. 레오노라의 은둔, 돈 카를로의 복수, 알바로의 도피는 결국 자신들의 운명을 만들어 간다. 이때 운명은 초월적 힘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 얽힌 결과로 보여진다. 이는 실존주의적 해석과도 연결된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존재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라고 말했다. 인간의 선택으로서의 운명은 외부에서 주어진 필연이 아니라, 우리의 결정이 엮어 만든 결과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선택은 나의 삶의 무게(운명)가 되는 것이다.

그 중간, 어디쯤

오페라 '운명의 힘' 의 진정한 매력은 운명이 신의 뜻과 인간의 선택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점이다. 우연이 겹쳐 마치 신의 개입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서 인간은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다시 말해, 신의 틀 속에서 인간의 선택이 운명을 형성한다는 양면적 구조가 존재한다. 이런 긴장감 때문에 작품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 철학적 깊이를 갖게 됩니다. 베르디는 신과 인간의 중간, 어디쯤을 음악으로 표현해 낸다. 서곡부터 들리는 금관악기의 반복되는 리듬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상징하고,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관객이 듣던 듣지 못하던 금관악기의 리듬은 다가오는 운명의 긴장과 압박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오페라 '운명의 힘'이 보여주는 운명은 단순히 신의 것이거나 인간의 것이 아닌, 신의 질서와 인간의 선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질문한다. '운명은 주어지는 것인가, 만들어가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