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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시작과 끝 - 아홉 해의 끝에서 나를 다시 보다

by Polymathmind 2025. 11. 17.

2017년 6월 어느 날 아침, 전 주의 공연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었다. 갑자기 필자의 선생님께서 전화하셨다. 급하게 여수에 내려올 수 있냐고 말이다. 나는 다음날 아침, 여수로 출발한다. 이 한 걸음이 나를 스스로 준비시킬 줄 몰랐다. 선생님의 부름에 해야만 할 것 같았고, 아니면 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나보다. 

이 시작이 GS 칼텍스 예울마루(여수)의 5년 프로젝트 '헬로! 오페라'였다. 예울마루의 기획팀장님께서 야심차게 기획하여 여수 시민들에게 오페라의 저변확대를 꿈꾸셨다. 시작은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다. 예산과 홍보의 문제는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큰 벽이다. 하지만, 거기서 전환점을 찾아야 했고, 묵묵해야 했다. 1년에 2편의 작품을 제작해야 하니, 그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조연출만 했었던 시기였기에, 연출가의 시작을 알려야하는 부담감과 두려움을 과하게 표현하지 않게 억누르느라 애먹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울마루의 '헬로! 오페라'는 고정팬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획팀은 여수시의 지원을 가져왔고, 노하우를 가지기 시작했다. 목표와 목적을 이루며 나아간다. 시간이 흘러도 두려움과 부담감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견디는 법을 배웠고, 새로운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익숙함이 조용히 자리를 잡아갔다. 어제의 나보다 단단해지고 유연해지는 나를 발견하며 그 시간들을 통과하고 있었다. 결국 지금 돌아보면 '헬로! 오페라'는 나를 만들어준 것이다. 

9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혼자 완성한 것이 아니다. 함께 웃고, 싸우고, 포기할 듯 흔들리면서도 다시 마음을 다잡던 우리가 있었다. 적은 예산에서 시작한 우리는 함께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속도를 지켜가며 한 걸음씩 맞춰갔다. 기획팀장님이 꾸셨던, 여수시에 오페라를! 이란 꿈은 우리 모두의 방향이었고, 부족한 곳은 서로 바라보며 맞췄다. 극장 제작공연계에서는 모범사례로 회자되며 우리의 꿈을 증명해 나갔다. 

5년의 프로젝트 기간이 끝났지만, 3년을 더 제작했고, 끝이 다가왔다. 알고 있었음에도 지난 주 여수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아름다운 극장은 눈에 담고, 루틴처럼 먹었던 여수 햄버거는 입에 담고, 멋진 순간과 사람들은 마음에 담았다. 후련함과 아쉬움, 비어 있음과 충만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이었다. 아홉 해의 무게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연대감이 남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용기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를 알아가고 만들어간 가치있는 시간이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시간을 건너며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존재다.' 시간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그제 넣느냐 아니면 내가 시간 속에서 움직이느냐로 나의 존재가 증명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돌아보며, '해냈다' 보다는 '살아냈다'가 느껴졌다. 9년의 결과를 내기보다 불확실하지만 다시 살아 낼 여지를 갖고 싶다. 완성이 아닌 다른 새로움을 갖고 싶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있기 때문이다.

-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준비해주신 GS칼텍스 예울마루 기획팀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