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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인간과 거인

by Polymathmind 2025. 8. 19.

두려움과 타자의 형상

'진격의 거인'에서 거인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이 가장 근본적으로 두려워하는 타자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인간을 집어삼키는 거인은 존재론적 불안을 일깨우며, 인간 자신이 만든 경계와 한계를 직시하게 한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가 나를 위협하면서 동시에 나의 책임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작품 속 거인은 외부의 절대적 적으로 그려지지만, 곧 그 존재가 인간 내부에서 비롯된 결과임을 드러낸다. 즉, 인간이 인간에게 거인이 되는 상황을 상징하며, 두려움의 대상은 종종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거인의 존재는 사회적 통제와 두려움의 메커니즘을 상징한다. 벽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외부 거인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자유를 제한한다. 이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권력과 억압이 두려움을 매개로 정당화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작품은 단순한 괴물의 공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구조적 공포와 심리적 억압을 성찰하도록 이끈다.

자유와 억압의 역설

주인공 에렌의 여정은 자유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을 보여준다. 그는 벽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부수고 바깥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벽 너머의 세계는 또 다른 폭력과 억압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고대 철학에서 스토아 학파가 강조한 “외적 자유보다 내적 자유가 중요하다”는 사상과 맞닿아 있다. 인간은 환경이나 외부적 제약을 없앤다고 해서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다. 자유란 스스로의 공포와 욕망을 직면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실현된다.

에렌의 투쟁은 단순한 물리적 싸움이 아니라 자기 존재와 세계의 구조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이 마주하는 역설은, 자유는 항상 책임과 결부되어 있으며, 한 개인의 자유만으로는 사회적 억압을 해소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보어의 상보성 원리처럼, 인간의 현실은 단일한 관점만으로 이해될 수 없고, 자유와 억압은 상호 보완적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역사, 폭력, 그리고 순환의 비극

'진격의 거인' 세계에서는 폭력과 복수가 끝없이 반복된다. 특정 민족이 과거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은 새로운 세대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이는 헤겔의 역사관과 대비되며, 역사가 자유의식의 발전이라는 낙관보다는 인간이 반복하는 폭력과 증오의 기록으로 나타난다.

작품은 또한 기억과 책임의 문제를 제기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교훈을 찾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기억이 종종 증오와 보복의 도구로 변용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폭력의 순환을 끊기 어렵고, 그 반복 속에서 사회적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철학적 의미와 인간적 성찰

'진격의 거인'은 단순한 판타지 서사나 전쟁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은 인간 존재와 사회 구조, 자유와 책임, 역사적 기억과 폭력의 문제를 거인의 형상을 통해 거울처럼 비춘다. 니체의 권력의지 개념을 적용하면,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존재와 환경을 극복하려는 본능적 의지를 가진 존재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힘은 선과 악, 자유와 폭력 사이에서 항상 이중적 양상을 보인다. 푸코의 권력,지식 관점으로도, 벽과 거인이라는 구조는 권력의 작동 방식을 상징하며, 인간의 행동과 사고가 어떻게 권력과 지식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거인 속의 인간, 인간 속의 거인

'진격의 거인'은 거인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사회 구조를 탐구한다. 거인은 외부적 적이지만 동시에 인간 자신이 만들어낸 공포와 억압을 상징한다. 자유와 폭력, 책임과 기억의 문제는 현실 세계와 직접 연결된다. 작품은 인간이 자기 안의 거인을 직면할 때만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결국 이 애니메이션은 판타지를 넘어 인간 존재와 사회, 윤리적 선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