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죽음은 가장 근원적인 공포 중 하나이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마지막 문, 존재의 소멸이라는 본질적인 두려움은 인간과 늘 함께했다. 하지만, 때로는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 무엇이 두렵기에 죽음을 선택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은 왜, 무엇이 두려워서 죽음을 선택했을까? 우리가 살아내야하는 삶이 더 공포스러운게 아닐까?
죽음은 모든 고통의 끝, 모든 책임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은 계속 마주해야하는 공포이다.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더 큰 불안감과 긴장감을 준다. 죽음은 종착역이지만, 삶은 끝없이 펼쳐지는 미지의 길이다. 그래서 다양한 고통의 연속이 계속되고 그것을 견뎌내야하는 과정이 삶이다. 수많은 책임과 의무로 버거워질 때, 삶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나의 존재는 공허해지며 목적과 의미는 사라진다. 이 때, 절망감과 무기력감은 우리를 종착역으로 이끌어간다. 몇번은 견디지만 자신은 없고, 무게는 더 무거워지며, 육체는 살아있지만 영혼은 이미 무너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견딜까?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과거는 결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현재를 집중한다면 말이다. 즉 인간은 매우 연약하며,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결국 나를 변화시키는 것만 할 수 있다. 불가능한 것에 에너지를 쏟지말고, 가능한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알게 되며, 나의 가치를 보게 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이미 '너 자신을 알라'라고 던져준 말이다. 자신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다면 목표가 설정되며 그 과정에서 삶은 더 이상 고통의 연속이 아니라 도전의 연속이 된다.
고통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고통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고통은 성장의 유일한 기회이자 선물이다.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시도조차 못할 것이며, 시도를 못한다면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넘어진 것에 집중하지말고 일어서는 것에 집중하자. 누구나 넘어지고 깨지고 실패한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삶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유한하다.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우리의 삶이 빛날 것이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삶이지만,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깨닫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말로는 쉽지만, 현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렵지만 당신은 분명 잘해내고 있고, 앞으로도 잘해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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