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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영화 '히든 피겨스' - 그림자, 객관성, 권리

by Polymathmind 2025. 5. 28.

영화 '히든 피겨스'

2016년, 마고 리 셰털리의 동명 논픽션이 영화로 제작된다. 1960년대 머큐리 계획(미국 최초 유인 우주 비행 탐사 계획)의 이야기다. 머큐리 계획의 목표는 소련의 유인 우주비행을 앞지르기 위함이었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대항해 시작되었으며 NASA 설립 후,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존 F. 케네디는 '1960년대가 가지 전에 달에 인간을 보내겠다.' 선언한다. 이후 제미니 계획과 아폴로 계획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인간 컴퓨터였던 하지만 그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했던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다.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 그림자 같은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 그림자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은 NASA 우주 개발의 중심에 있었지만,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다.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은 모두 천재적인 수학적 능력을 갖췄지만, 단지 여성이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회의실에도 들어가지 못했고, 화장실조차 건물 밖에 따로 있었다. 이들은 ‘컴퓨터’라는 직함으로 불렸지만, 사실상 첨단 과학의 실무를 책임졌던 핵심 인물들이었다.

이 영화는 과학사에 이름을 남긴 몇몇 ‘위인’이 아닌, 이름 없이 지워진 사람들의 공헌을 복원한다. 과학의 발전은 단일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협업과 침묵 속 노동 위에 세워진 것임을 말해준다. 감춰진 인물들이 드러나는 이 순간, 우리는 과학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과학자로 기억해 왔는가?

과학은 객관적인가?

흔히 과학은 감정이나 사회적 가치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진리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NASA라는 최첨단 과학의 중심에서도, 유색인종 여성은 출입이 제한되었고, 직함과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남성의 확인 없이는 계산서 하나 제출할 수 없었다.

캐서린은 유색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계산실에서 외면당했고, 도로시는 실제로 관리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관리자라는 타이틀은 부여되지 않았다. 과학은 ‘논리’와 ‘사실’을 다루지만, 그 논리와 사실을 누가 사용하고, 결정하고, 드러내는가는 철저히 사회의 권력 구조에 좌우된다. 즉, 과학은 결코 사회로부터 중립적이지 않다. 히든 피겨스는 이 점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숫자와 공식을 다루는 공간조차 차별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과학의 중립성이라는 신화를 다시 성찰하게 만든다.

지식의 권리

히든 피겨스의 진짜 힘은 단지 피해자들의 서사를 다루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세 주인공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지식에 접근하고, 자기 자신을 성장시켜 가는가에 주목한다.

도로시는 공공 도서관에서 몰래 책을 빌려 프로그래밍을 독학했고, IBM 기계를 누구보다 먼저 다룰 줄 아는 전문가가 되었다. 메리 잭슨은 법정에 서서 엔지니어 교육을 받을 권리를 얻었고, 결국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된다. 캐서린은 포기하지 않고 수천 번의 계산을 통해 우주선의 귀환 궤도를 정확히 예측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명백히 말한다. 과학은 특정한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식은 ‘가진 자’의 자산이 아니라, 모든 이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공공의 권리이다. 과학의 민주화란, 단지 교육의 기회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자리에 있는 수많은 ‘숨겨진 인물’들에게 정당한 자리를 돌려주는 일이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과학의 이면을 말한다. 그것은 우주를 향한 비전이면서도, 땅 위의 불평등과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묻는다. “과학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 대답하게 만든다.
과학은 단지 천재 몇 명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협업과 인내, 그리고 용기로 쌓아 올린 공동의 유산임을 우리에게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