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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영화 '미키 17' - 기억, 죽음, 실존에 대한 질문

by Polymathmind 2025. 8. 7.

존재란 무엇인가: 복제 인간의 눈으로 본 실존

'미키 17'은 한 인간이 죽을 때마다 복제되어 되살아나는 ‘소모 가능 인간(Mickey)’이라는 설정을 통해, 존재의 경계를 질문한다. 주인공 미키는 열일곱 번째로 태어난 자신이 이전 미키들과 무엇이 다른지, 혹은 동일한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되고, 이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한 "실존(Existenz)" 개념과 연결된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단순히 ‘존재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를 인식하고 존재를 자각하는 순간, 실존적 존재로 거듭난다고 봤다. 미키는 자신이 복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자아와 기억을 지닌 존재로서의 자각을 통해 진정한 실존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나와 똑같은 기억과 외형을 지닌 존재가 있다면,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가?

죽음의 반복, 그리고 윤리의 경계

영화 속 미키는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어 죽고, 다시 복제되어 돌아온다. 이 과정은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기술이 어떻게 소비 가능한 자원으로 전락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복제는 죽음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죽음이 무의미해진 사회는 생명의 존엄성 또한 희석시킨다. 이는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한다. 아렌트는 인간이 윤리적 판단 없이 시스템에 순응할 때, 악은 너무도 일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했다. 미키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는 인간의 도구화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기술 발전 속에서 반드시 붙잡고 있어야 할 윤리의 기준을 상기시켜준다.

기억과 정체성: 나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복제 인간 미키는 이전 버전과 동일한 기억을 갖고 태어나지만, 그 기억의 해석 방식과 감정, 결정은 매번 달라진다. 이는 존 록크의 ‘기억 정체성 이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록크는 동일한 기억을 공유할 때, 동일한 인격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키 17'은 한걸음 더 나아가, 기억 자체보다 기억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관점, 해석, 감정이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기억이 같아도 ‘나’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임을,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며 해석 가능한 것임을 말한다.

인간다움의 미래는 무엇인가?

'미키 17'은 단지 SF적 상상력에 머무는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기술과 생명, 기억과 자아의 본질을 탐색하며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반복 가능한 존재인가? 죽음을 넘어선 존재는 인간일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기억과 감정으로 ‘나’가 되는가? 영화는 직접적인 대답을 주지는 않지만, 현대 사회가 반드시 성찰해야 할 방향을 질문한다. 기술의 진보 속에서도 인간다움은 여전히 사고하고, 기억하고, 고뇌하는 실존적 존재로서 유지되어야 함을, 이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