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은 지구 위의 한 점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깊은 갈망과 질문이 집약된 상징적 공간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라는 세 종교의 성지이자, 수많은 전쟁과 평화, 기도와 침묵이 교차한 장소인 이 도시는, 단지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이 ‘신과 인간’, ‘이방인과 공동체’, ‘과거와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해온 흔적 그 자체다.
신을 향한 갈망, 도시로 구현되다
예루살렘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신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이 세운 예루살렘은 단지 정치적 수도가 아니라, 신이 머무는 성전이 존재하는 도시였다. 인간은 신을 우주 너머의 초월적 존재로만 보지 않았다. 신은 도시에 거하고, 성전 안에 임재하며, 구체적인 장소 속에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고는 곧 도시의 신성화로 이어졌고, 예루살렘은 시간 속의 공간이 아니라 영원의 관문으로 인식되었다. 신은 인간에게서 멀어져 있지 않으며, 인간은 도시를 통해 신과 만날 수 있다는 이 믿음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모두에 공통적으로 흐른다.
공존과 충돌, 타자를 만나는 도시
그러나 예루살렘은 ‘성스러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도시는 언제나 타자의 문제, 즉 ‘나 아닌 자’와의 관계를 피할 수 없었다. 유대인, 아랍인, 기독교인, 무슬림, 드루즈 등 다양한 공동체가 이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기억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다.
종종 그 차이는 공존의 가능성을 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충돌과 갈등의 서사로 기록되었다. 성전산, 통곡의 벽, 바위의 돔, 성묘 교회는 각각의 종교에겐 신성한 공간이지만, 타자에겐 ‘소외된 장소’가 되었다.
예루살렘은 인간이 얼마나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에 집착하는 존재인지, 그리고 타자의 신념을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러내는 도시다. 이곳에서는 ‘나의 신’이 곧 ‘너의 적’이 되기도 하고, 종교적 신념이 정치적 현실을 지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억의 중첩, 시간의 도시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 수없이 파괴되고, 다시 세워졌다. 그 속에 축적된 기억의 지층은 이 도시를 하나의 ‘시간의 탑’으로 만든다. 거리 하나를 걷는 일은 곧 고대 유대 왕국,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이슬람 칼리파, 십자군, 오스만 제국, 현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밟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겹쳐진 시간’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삶과 신념, 고통과 기다림의 흔적이다. 이곳에서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원형이며, 과거는 단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의 언어’로 되살아난다. 그만큼 예루살렘은 인간의 기억 능력, 역사 서술의 다양성, 그리고 진실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예루살렘, 인간의 거울이자 한계선
예루살렘은 거룩함과 폭력이 동시에 깃든 모순의 공간이다. 그것은 곧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경계성을 드러낸다. 우리는 신을 향한 사랑으로 도시를 세우지만, 그 신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타자를 배제하기도 한다.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지만, 그 안에서 늘 경계와 구획을 짓는다. 예루살렘은 우리가 얼마나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도 다른 것을 믿는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동일한 장소에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인문학은 이 도시를 통해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조명한다. 예루살렘은 단지 종교의 중심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가장 깊이 성찰하게 하는 도시이다. 신은 도시에 머무르지만, 진정한 평화는 인간의 마음에 달려 있다. 예루살렘은 오늘도 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